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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연혁

한국 롤러경기역사

우리나라는 일제 때 파고다 공원부근에서 옥외 링크 장이 만들어지면서 처음 롤러스케이팅이 소개되었으며 그 이후 약간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즐기던 것이 빙상선수들의 자기훈련 연습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1961년에 서울 시청광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경기를 하였다가, 그 이후 다시 침체되었다.

다시 1972년 1월 롤러스케이팅을 즐기는 동호인들에 의해 경북로울러스케이팅협회를 조직한 것이 우리나라 롤러스케이팅연맹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을 계기로 하여 1973년 연맹의 명칭을 한국로울러스케이팅협회로 개칭하면서 전국 규모의 단체를 구성하는 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당시 2대 회장을 맡고 계시던 김성화 회장 자신도 실제로 롤러스케이팅을 즐겼고 특히 일본과의 교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교환경기를 대구의 국제롤러스케이트장에서 개최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 후, 1977년 국제롤러스케이팅연맹에 가입서류를 제출하고 1977~1979년 캐나다 몬트리올 총회에서 정식으로 가입승인을 받게 되면서 국제무대의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1978년 2월 연맹 명칭을 대한로울러스케이팅연맹으로 개칭하였고, 일본, 인도, 한국, 대만 등의 국가와 아시아롤러스케이팅연합을 결성하기로 합의를 하고 한국에서 이에 따른 협의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1979년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로 승인을 받고 그때까지 대구에 있던 연맹 사무실을 서울로 이전하게 되면서 전국에 지부를 결성하고 비로서 1981년 6월 20일 대한체육회 정식단체로 승인을 받게 되었다. 1983년도에 전국체육대회 시범종목으로 확정되어 그 해 인천에서 시행되었으며, 1984년 대구 전국체전을 거쳐 1985년도 강원도 전국체육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비로서 롤러스케이팅이 국내에서 완전한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에서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한 롤러스케이팅은 1986년도에 최초로 세계롤러스피드선수권대회(미국, 콜로라도)에 선수단을 파견하게 되었으며, 이 대회에서 여자선수들이 종합 6위를 획득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그 해 10월 일본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단이 스피드부문 종합우승을 획득하였으며, 제2회 대회를 전남(광주)에서, 제7회 대회를 강원도(강릉)에서 두 번에 거쳐 국내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비로서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발판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85년 강원 전국체육대회에 정식종목 채택과 더불어 각·시도 간에 치열한 경쟁으로 실업팀 및 대학팀이 만들어져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각 시·도 별로 125m의 실내 경기장이 건립되었으나, 200m 뱅크트랙으로의 전환을 맞이하여 1998년 제주도 전국체육대회를 끝으로 125m 경기장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인천 전국체육대회를 시작으로 롤러경기는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롤러경기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국내 최초로 200m 뱅크트랙에서의 전국체육대회를 인천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동시에 선수들의 장비도 전통 롤러스케이트에서 인라인스케이트로 전환이 되었고,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 200m뱅크트랙의 변환으로 많은 기록의 경신과 함께 선수들의 기술 및 경기력 향상을 가져 왔으며, 이러한 결실은 2001년 프랑스 바렌스아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대회 참가 16년 만에 주니어부에서 경기도 안양의 귀인중학교 궉채이 선수가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롤러 피드스케이팅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2003년 베네수엘라의 바르키시메토에서 시작되었다. 우효숙이 그 시작을 열었다. 한국 시니어 선수 최초의 금메달이었다. 이후 그녀는 2011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2007년도 2관왕, 2008년도 3관왕, 2009년도 2관왕에 이어 2011년에는 대회 유일의 4관왕의 위업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부터 이어진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한국의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와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된 2006년 안양대회는 역대 최고의 대회로 손꼽힐 정도로 성공적인 대회였으며, 한국선수단도 사상 최고의 성적인 메달합계 종합2위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어 2011년에는 여수시가 두 번째 개최도시가 되어 역시 종합2위의 결과와 함께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2006년을 기점으로 한국 롤러스피드스케이팅은 2011년까지 종합2위 이상의 결과를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2009년 유준상 회장 체제 출범 이후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2009년 하이닝대회에서 한국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이룩하였고,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관계로 주니어선수들로만 참가하였음에도 메달합계 종합2위를 거두었다. 롤러스포츠가 처음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된 2010년 광저우에서는 금 3개, 은 2개, 동 2개를 획득하며 스피드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하였고, 2011년에도 종합2위를 차지하는 등 명실공히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 최강임이 입증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이외에도 인라인하키는 과거 아이스하키출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동호인팀의 활발한 활동으로 국내대회가 꾸준히 개최되고 있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동안 몇몇 동호인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롤러피겨를 다시 일으키고자 일본의 지도자인 아이라 오바나를 초청하였으며, 2007년 당시 고등학교 학생 3명을 대표로 선발하여 기본기를 가르쳤고, 실력은 부족했지만 그해 11월 호주의 골든코스트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 외 롤러피겨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남자 1명, 여자 2명, 지도자 1명을 파견한 바 있다. 슬라럼(프리스타일스케이팅)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동호인들로 구성된 관련단체들과 통합을 시도하였지만 무산되었고, 2009년 유준상 회장 취임 이후 슬라럼 선수들이 선수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국내대회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렇듯 과거 스피드스케이팅을 주로 하여 유지되던 연맹의 공식종목도 인라인하키, 롤러피겨 그리고 슬라럼으로 다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롤러스포츠 세부종목을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2011년 1월 25일 대의원총회를 통하여 대한인라인롤러연맹에서 대한롤러경기연맹으로의 개칭안이 통과되었고,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본 개칭안이 승인되었다.

 
세계 롤러경기역사
 

롤러스케이트는 인간이 바퀴를 사용 하는 것과 함께 발전하여 왔다. 롤러스케이팅은 바퀴를 이용한 생활스포츠이다. 바퀴의 발달은 인간이 행동하는 기회를 잃게 하였고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체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바퀴를 역으로 이용해서 체력을 증강시키게 하는 스포츠가 롤러스케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는 자동차의 운전 각종 기계류의 조정 등으로 평형신경, 반사신경을 쓸 기회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 쪽에서 롤러스케이팅은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롤러스케이팅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새로운 레저스포츠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롤러스케이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은 아닐지라도 역사가 짧은 스포츠는 아니다.

원시시대 때 의ㆍ식ㆍ주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퀴를 사용하게 된 것이 롤러스케이팅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용하던 바퀴를 생활의 즐거움에 이용이 되면서 자전거와 같이 도보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롤러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의견은 네덜란드의 Hans Brinker가 신발에 나무실패를 버클 형태로 달아 신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형태는 매우 불안스러웠고 관심을 끌지도 못하였다.


실질적인 첫 발명은 1760년경 악기제조업자인 Joseph Merlin(벨기에)이 런던의 한 가장무도회에 금속바퀴가 달린 부츠를 준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마룻바닥 무도회장에 바이올린을 켜며 물 흐르듯 등장하여 몇 바퀴를 돌면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정지를 할 수 없어 대형 거울로 돌진하여 바이올린이 망가지고 상당한 부상을 입는 사고를 냈다. 후에 프랑스인 Jesh Gorcin이 참 스케이터란 책을 썼고 그 자신이 스케이트를 발명하였다. 1813년 그는 그의 성을 따서 그의 스케이트에 Cinga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30여년 후에 Patin Terre 라는 제품이 나왔으며, 이어 여러 제품들과 지도서가 나오게 된다. 특히 1823년에 신발 앞뒤에 각각 5개의 바퀴를 일렬로 한 Rolito(영국인 Rovert Jone Tyre 제작)라는 제품이 나왔다. 이는 요즘의 인라인 스케이트에 양 쪽 보조 바퀴 2개가 달린 형태로 턴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불확실한 방향전환 그리고 밸런스에 어려움이 있어 많이 유행하지는 못하였고, 앞과 뒤에 각 한 개씩의 바퀴형태가 주를 이루어 유행했다.

1840년에 파리의 Port Saint Martin극장에서 Artistic Skating공연이 처음 이루어졌다. 이 공연은 페르시아의 한 롤러스케이터가 그의 오페라에 롤러스케이팅으로 아이스스케이팅의 효과를 내어 갈채를 받았다. 같은 해에 작곡가인 Eilippo Toglion이 겨울의 기쁨 아이스스케이트 발레공연에 아이스스케이팅 장면을 롤러스케이팅으로 표현했다. 이즈음 잘 알려지지 않은 런던 사람이 1852년에는 Dernier Cri라는 제품 즉, 센터 양쪽에 두 개, 앞뒤에 각 1개의 바퀴가 달린 제품을 내놨다. 하여간 이 당시 공연에 롤러의 이용은 매우 필수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1940년에 Port Saint Martin극장에서 댄서 Monsieur와 Madame Dumas가 피겨 공연을 했다.

1849년에 연출가 Giacomo Meyerbeer는 그의 오페라 Le Prophete의 얼음판에서의 장면을 보다 리얼리티하게 공연하기 위해 Louis Legrend를 고용하여 배우들에게 롤러를 지도하도록 하였고, 그는 여성을 위해 페어 형태의 롤러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현 쿼드(전통)롤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이때는 주로 앞과 뒤에 각 1개의 롤러가 사용되고 있었다. 하여간 그는 이런 형태의 공연으로 대성공했고, 이에 따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롤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1861년에 Garcius의 롤러스케이트 발명품이 산업공학인에 의해 채택되어 파리 산업박람회에 전시되었으며, 이 박람회의 결과로 1863년 미국 뉴욕 James Leonard Plimpton이 앞뒤 양쪽에 바퀴를 부착하고 액슬을 조합하여 유연성과 부드러운 커브, 턴, 앞뒤 스케이팅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또 처음으로 1866년도 뉴포트에 공중롤러링크를 운영하기도 했다. 미국 발레리나의 대가인 Jackson Haines는 아이스스케이팅(피겨)을 응용하여 롤러스케이트의 기술을 가르쳤으며, 이것이 Artisitic Skating의 국제적 스타일의 기본이 되었다. 그 후 1876년 파리에 화려한 롤러스케이트 체육관이 건설되었고, 같은 해에 영국인 건축가인 독일의 Behin Hasuheids에 의해 유럽에서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장이 건설되었다.

그 당시 현존하는 가장 큰 롤러스케이트장은 런던에 있는 Grand Hall Olympic인데, 이 크기는 축구경기장 크기 정도의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1890년 4개월 정도 개장했다가 1909~1919년까지 다시 개장했었다. 그 당시 독일에는 50여 개의 스케이트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왕이 거주하는 로마의 Quirinale궁전은 여왕에 의해 개최되는 롤러스케이팅 축제의 명승지였다고 한다. 이 축제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으며 그때부터 롤러스케이팅이 스포츠 종목으로 간주되면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여러 모델이 나왔으며, 1884년 미국인 Richardson이 베어링 바퀴를 처음으로 조합했다. 이로써 쿼드롤러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많은 화려한 롤러링크가 건설되었으며, 바닥은 단풍나무로까지 건설되어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1877년에 처음으로 프랑크푸르트 Palm Garden에 벨로드롬경기장이 건설되었다. 하여간 20C초까지 장비와 경기장은 상당부문 고급화되고 유럽과 미주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갔다. 아울러 각국에는 클럽이 생기게 되고 조직화하기 시작했으며, 1870년대 말부터 링크폴로라고 부르는 현 하키경기의 전신이 생겨났으며 런던의 Denmark Rink에서 경기를 했다. 1905년에는 영국에서 아마츄어하키연맹이 생겨나 1906년에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스피드부문 1.5마일에서 Hal Bert가 우승했으며, 1910년 12월 24일 파리의 벨로드롬에서 Marie Borda가 24시간에 476.033km를 레이스한 믿지 못할 기록을 내기도 했다. 또한 Jesse Carey는 1시간에 28.83km를 주파했고, 이를 1911년에 부르쉘에서 30.2km로 갱신을 했다. 그리고 1901년 초에 런던에서는 아이스하키를 모방하여 링크하키를 하는 하키팀이 생기게 되었고 매우 빠르게 유행되어 나갔다. 또한 Artistic skating도 발전을 거듭하여 경기장에서 유능한 선수는 'instructors'라는 칭호를 받아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하게 되었다. 20C초는 롤러 스피드, 링크하키, 아티스틱의 많은 이벤트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성황도 1차 세계대전으로 침체기에 접어든다. 이러던 것이 벨기에의 안트베르펜(Antwerp)의 근교 작은 타운 Duerne에서 Rozenhop를 1915년에 오픈한 이래 다시 활동이 활발해져갔다. 그러나 프랑스, 벨기에, 독일 ,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영국과 스피드에 관해서 제한적인 교류로 만족해야 했다. 아티스틱의 경우 영국, 벨기에, 독일만이 시행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4년 4월 스위스 몽뜨뢰(Montreux)에서 스위스, 영국, 독일, 프랑스 4개국이 만나 Federation International de Patinage a Roulettes(FIPR)를 창설하고, 스위스 Herr Renkewitz가 회장이 되고 Herr Otto Mayer가 사무국장이 되었다. 이어 1925년에 이탈리아와 벨기에이 합류했고, 1926년에는 런던에서 6개국이 rink hockey 유럽선수권대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스위스((Montreux)와 영국(Herne)에서 번갈아 개최되었다. 친선대회와 국내대회는 빈번했으며, 1936년에 독일이 유럽선수권대회를 세계선수권대회로 하고 스피드와 아티스틱을 포함 개최하겠다는 화려한 계획을 세우고 FIPR에 요구를 하여 승인을 받았다. 결과는 세 종목 모두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관중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아티스틱의 화려함에 관중들은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 두 종목을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하키만의 조직인 FIPR로는 한계가 있어 Stuttgart 총회에서 스피드, 링크하키 그리고 아티스틱과 댄스의 기술위원회를 설립했고, 이들 위원회가 각종 행사를 관장하게 되었다. 한 도시에서 세 개 종목을 성공리에 마치자 비 유럽국가 즉, 미주, 오세아니아주, 북아프리카 국가가 전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해 주었다. 그리고 보다 광범위한 참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소 주춤거리던 시기를 지나 전쟁의 피해가 없던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하키를 중심으로 활발했고 이들의 성공적인 활동으로 남미, 아시아 등이 참여하여 명실공히 세계연맹으로 면모를 갖추었다.

아티스틱(Artistique)경기는 워싱턴(1947), 바르셀로나(1949), 토리노(1951), 도르트문트(1952)등이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면서 현대식 스포츠홀을 건설하였으며, 링크하키의 경우 몬트리올, 리스본, 밀라노, 포토, 제네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그 당시로는 놀라울 정도의 대성황을 이루어 15,000여명의 관중이 몰려들고 있었다. 스피드의 경우 이탈리아의 큰 도시 Farrara, Bari, Padua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세계 및 유럽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열기는 식지 않았고 1980년을 전후로 남미 및 북미, 뉴질랜드 등에서도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되는 등 보다 세계화하여 갔으며,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아가게 되어 1940년 제43차 IOC위원회에서 공식 승인에 이어 1971년 제71차 국제올림픽위원회의(IOC)에서 재승인 받았으며, 1979년에는 판아메리칸컵 그리고 1981년에는 세계월드게임에 입성하게 된다.


다시 장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쿼드롤러의 전성시대에 인라인의 태동은 시작되었는데 인라인스케이트는 오래 전부터 빙상선수들의 하계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등 이 종목을 즐기는 상당수의 사람들도 국내외적으로 있었으며 이 제품에 대한 관심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롤러경기연맹(FIRS ;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Roller Sports)은 일자형태의 인라인, 삼륜형, 그리고 병렬식의 쿼드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쿼드롤러'라는 결론을 내리고 규정을 쿼드로 고정시키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제품 중에는 쿼드가 롤러로써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에 미국의 롤러블레이드社가 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발을 시작하였고, 신발회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로체스社의 도움으로 고성능의 인라인이 만들어져 1986년경부터 미국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인라인 제품이 '롤러블레이드'로 통하게 된 동기도 롤러블레이드 제품이 미국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면서 우리 조미료 미원처럼 그렇게 굳어진 것이며, 블레이드 역시 날(칼)이라는 의미가 있어 의미에 연관성도 있다 하겠다. 각설하고 이처럼 1980년대 말에 한참 인기를 구가하며 국제연맹의 변화를 두들겼으나 대개의 기존 조직이 그렇듯이 그 당시 FIRS로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이를 답답하게 여긴 제품시장에서는 새로운 국제연맹조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동계종목인 아이스하키연맹은 자기의 종목으로 포함시켜 하계종목 진출을 꿈꾸기에 이른다.

이에 1990년 국제연맹의 마카오 총회 시 미국(구드 반 로켈)에서 유럽(스페인의 Isdro Oliveras) 쪽으로 회장이 바뀌고 분위기가 일신된 상태에서 인라인 종목 수용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1992년 이탈리아 로마선수권대회에서 T300m와 남녀 제외경기(남 20,000m, 여 15,000m), 그리고 처음 도입된 마라톤 종목에 인라인스케이트를 부분 허용했으며, 1993년 미국 콜로라도선수권대회에서는 500m와 중거리 및 계주를 제외하고 모두 허용했으며, 1994년 프랑스 Gujan-Mestras선수권대회부터는 전 종목을 인라인과 쿼드 자유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 결과 1997년부터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쿼드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하키의 경우 별도 인라인 분과를 두기도 했지만 전통 롤러하키에서도 인라인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피겨의 경우 기술적인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댄싱 부문을 제외하고는 빙상스케이트와 같이 양쪽 병렬식 쿼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롤러종목은 제품의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되고 있으며, 쿼드롤러에서 인라인스케이트로 바뀐 것도 아직 수지와 베어링 그리고 플레이트 탄성 등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쿼드가 더 안정적으로 롤러를 즐길 수 있었으나, 금속의 탄성이 발전함에 따라 인라인의 코너링이 자유로워지고 수지의 발전으로 바퀴 등의 충격을 완화해줄 수 있게 되고 쿼드롤러보다 지지 면이 적은 인라인스케이트가 성능이 나아지게 된 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쿼드는 Truck과 Cushion 등이 있어 코너링과 충격완화에 도움을 주었다.)

현재 국제롤러경기연맹(FIRS ;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Roller Sports)은 2005년부터 이탈리아의 사바티노 아라쿠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본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 두고 있다. 산하에 대륙별 연맹으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및 판아메리카 등 5개가 있으며, 각 종목별 위원회로는 CIC(스피드스케이팅 / 회장 : Dr. Roberto Marotta, 이탈리아), CIPA(아티스틱 / 회장 : James Pollard, 미국), CIRH(링크하키 / 회장 : Harro Strucksberg, 독일) 및 CIRILH(인라인하키 / 회장 : Gilbert Portier, 프랑스)가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세계스피드(트랙/로드)선수권대회 및 세계프리스타일스케이팅(슬라럼)선수권대회,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세계롤러하키선수권대회 및 세계인라인하키선수권대회가 구분되어 개최되고 있다.

이후 국제연맹은 급변하는 추세를 적극 반영하고 흡수하여 기존 관장종목을 10개 늘리며 규모를 키워나갔으며, 2017년 9월 3일 중국 난징에서 개최된 임시총회에서는 FIRS(Federation Internationale de Roller Sports)라는 단체명을 월드 스케이트(World Skate)로 개칭하였다. 이를 통하여 더욱 롤러스포츠의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올림픽에 대한 열망을 담고자 하였다.

그 동안 롤러스포츠의 영원한 과제 중 하나는 올림픽 입성이었다. 롤러하키 선수출신으로 스페인연맹 초대 회장을 역임한 사마란치가 IOC위원장이 되면서 그 가능성이 점쳐졌었다. 그리고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 당시 롤러하키가 시범종목이 되면서 그 희망은 현실 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나, 스케이트가 인라인과 쿼드로 분리되면서 이러한 희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대신 1992년에 도입된 인라인마라톤이 활성화하면서 스피드가 올림픽 입성을 위한 희망을 싹틔웠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2012년 런던 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후보종목으로 IOC 총회에 상정되었으나 채택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러 종목들 가운데 3회 연속 후보종목(short list)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국제연맹이 FIRS 시절부터 World Skate에 이르는 동안 스피드 종목으로 올림픽의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려왔지만 정작 올림픽 입성은 뜻하지 않게 스케이트보드 종목이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6년 8월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제129차 총회를 열고 야구-소프트볼, 서핑, 클라이밍, 카라테와 함께 스케이트보드 등 5개 종목을 2020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했고, 이듬해 6월 1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를 통해 이 5개 종목의 정식종목 채택을 확정지었다. 스케이트보드와 관련해서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인구와 시설 그리고 경기력을 갖춘 나라이다. 또한 스케이트보드는 IOC의 ‘Olympic Agenda 2020’의 가치와 부합하며, 올림픽이 추구하는 양성평등 원칙과 젊음과 도시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새로운 젊은 세대를 올림픽으로 이끌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개최국과 IOC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종목인 셈이다. 이 계기를 통하여 월드 스케이트는 미국의 ISF(International Skateboard Federation)를 파트너로 확정하며 스케이트보드를 품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국제연맹이 명칭을 World Skate로 바꾼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스케이트보드를 지속적인 올림픽 종목으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World Skate는 2024 프랑스 파리, 2028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올림픽에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시도한 끝에 2024 파리 올림픽은 현재 시점에서 정식종목으로 결정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두었고, 도쿄 올림픽 이후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정식 종목을 위한 최종 추인 절차가 남은 상태이다. 올림픽 패밀리로서의 역할과 임무 수행을 위해 World Skate 사무국 본부도 2017년에 IOC와 각종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스위스 로잔으로 이전하며 진정한 올림픽종목 국제기구로서 외형을 갖추고자 시도하였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첫 선을 보이는 스케이트보드는 남녀 각각 스트리트 부문과 파크 부문으로 나누어 개최된다.

현재 World Skate는 기존의 아티스틱(종전 롤러 피겨), 인라인 프리스타일(종전 슬라럼), 인라인하키, 링크하키(종전 롤러하키), 인라인 알파인 및 인라인 다운힐, 롤러 더비, 롤러 프리스타일(종전 어그레시브), 스케이트보드, 스피드 외 스쿠터를 추가하며 총 11개 세부종목을 관장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는 롱보드를 포함하고 다운힐 방식까지 적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부종목의 확대와 발전 및 저변을 넓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와 같이 다양한 세부종목에 대한 규정과 대회 및 경기운영 등의 전문성을 높이고 저변도 확대해 나가기 위해 각 세부종목별 기술위원회를 운영 중에 있다.